불의 전도 (라인하르트 본케 지음/ 서로사랑) 1부
서문
복음 전도자는 누구인가?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부르지도 않은 곳에서 교회를 직장으로 삼고 있다. 예수님의 몸이 복음 전도자들의 사무실임을 다시 한번 담대하게 선포할 때가 왔다!
우리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결과를 위해 전투하도록 부름받지 않았다. 전투는 이미 골고다에서 승리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
1장 방화가 범죄가 아닐 때
나는 "사랑하는 주님, 주님을 위해 탈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나는 잿더미가 되고 싶지 않다. 모세의 덤불이 놀라운 것은 타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 너무 많은 수가 타서 재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불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주님 당신을 위해 내가 불을 놓게 하소서."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그 두 사람은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갔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하나님의 불은 특별, 아니 오묘하다. 오직 하나님의 불만이 모세의 제단에 허용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불경한 불을 드리고 있다. 전혀 복음적이지 않은 불신의 신학, 인간의 생각과 자신의 철학들, 비판과 이론들의 이상한 복음이다. 이것들은 천국의 영광과 열기를 감당할 수 없다. 그저 논쟁만 불태울 뿐이다.
성공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분의 방식으로 하실 때에만 일어난다. 그분이 들어오시는 곳에는 놀라운 승리가 있다. 그 분은 성공하실 수 있고, 성공할 것이며, 현재도 성공하고 있다.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도록 해야한다.
예수님은 물론 우리에게 다른 많은 축복을 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우리의 대변인이며 중보자가 되신다. 하지만 그분 자신은 이런 사역에 이름을 붙이지 않으셨다. 그분은 오직 성령의 보내심만 설명하신다.
하나님의 불은 우리의 제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 불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부흥의 불은 선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그것은 "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값없이 주어진 것에 너무많은 값을 치르다'라는 것이 바로 이 이경우이다. 불은 믿음으로 온다.
"파리는 차가운 난로 위에만 오랫동안 앉아 있습니다. 성령의 불을 당신의 삶으로 불러들이세요. 그러면 더러운 마귀는 감히 당신을 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하면 그 더러운 손가락을 데게 될 테니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지 않으시면 마귀가 그렇게 할 것이다. 인간이 감동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받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영혼에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를 주지 않고 어떻게 죄 용서의 기쁨을 누리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전도자의 본분이란 인간 정신에 불을 놓는 것이라고 믿는다.
2장 기름부음에 반대하는자
우리의 적은 마귀며, 세상을 기만하는 거짓이다. 하나님은 죽었다. 하나님은 무관심하시다. 우리는 예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등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우리는 하나의 적, 즉 마귀만을 대적할 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하나의 힘이 있으니, 그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이다.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3장 유한한 생명을 위한 무한한 사명
해산의 고통을 겪는 중에 정신적인 고뇌로 인해 나는 어려 번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데에 몇 시간을 보내야 했다.
"네가 만약 내가 너에게 준 그 비전을 포기한다면, 나는 그 비전을 받아들이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비판들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내 자신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하는 데 집중하도록 훈련했다. 그 이후로 사역과 그 결과물이 한 걸음씩, 때로는 다소 극적일 만큼 규모가 성장하였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것에 대한 가장 좋은 증거는 오해받고 비판받을 때에 인내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스불론과 납다리는 사업가인 단의 눈을 가지지 않았따. 단은 돈을 벌었지만 스불론과 납달리는 그날로부터 3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야기가 전해지는 놀라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구했던 전투와 승리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걸었다.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다.
단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을 하나님의 일보다 더 중요시 여기고 자신의 뒤뜰을 추수의 밭보다 더 풍성하게 하며, 자신의 집을 잃어버린 자를 위한 천국보다 더 귀하게 만들고, 영혼을 구하는 것보다 돈을 저축하는 것을 더 낫게 여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그리고 이후에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 일을 할 거야.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주말을 보내고 싶어. 휴가처가 있는데 그곳에 가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돼."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계획했던 것들과 갑작스럽게 생긴 문제들 그리고 다른 해야 할 일ㅇ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일이 먼저였다.
할 일은 쌓여 있고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고 어떤 일들은 신경을 써야만 한다. 하지만 헌신이 먼저다.
4장 복음을 찾아 헐떡거리다!
왜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일까? 교통부 장관에게 왜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도록 허락하는지 물어보라. 당연히 그는 당신의 비난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도로에는 규칙이 있다고 지적할 것이다. 그는 "법규를 지키지 않기 때문에 사고와 그에 따른 고통이 발생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