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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로 철학하기〉4.종교적 다원주의

글과 노는 자영 2011. 6. 23. 10:46

〈매트릭스로 철학하기〉4.종교적 다원주의

»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 책 소개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이 지제크/이운경 옮김/한문화

<매트릭스>는 1999년 개봉한 공상과학 영화다. 파격적인 특수효과, 화려한 액션이 눈요깃감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로 관심을 끈 영화는 많았다.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도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의 상투적 스토리다.

그런데도 <매트릭스>는 많은 영화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매트릭스> 안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인식론·존재론·인지과학·인공지능·실존주의·마르크시즘·불교·기독교·허무주의 등이 녹아 있다.

이런 주제는 일반인들에게 너무 어렵고 따분하다. <매트릭스>는 사람의 귀를 잡아끄는 방식, 만화책이나 비디오게임 같은 방식으로 이 무거운 걸 얘기한다. <매트릭스>는 액션 활극 영화의 외피를 뒤집어쓴, ‘인간의 의식에 관한 학위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 풀무질

<매트릭스>가 부활절 주간인 1999년 3월31일 개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경에서 예수는 구세주이며, “앞으로 오실 그”(누가복음 7:19)다. 네오는 ‘그’(The one)이며 메시아적 인물이다. ‘네오’(Neo)라는 이름의 철자는 ‘그’(One)의 철자를 변형한 것이다. 그리스어로 ‘neo’는 ‘새롭다’는 뜻이다. 이것은 부활한 네오가 시작하는 새로운 삶, 나아가 아마도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져다줄 새로운 삶을 암시한다.

<매트릭스>에서 네오의 이름은 토머스 앤더슨이다. 앤더슨(Anderson)은 ‘앤드루의 아들’이라는 뜻의 스웨덴어로 ‘사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어근 ‘andr-’에서 파생했다. 어원적으로 앤더슨은 ‘사람의 아들’이다. 예수는 자신을 가리켜 종종 ‘사람의 아들’이라 일컬었다. 영화 초반부에 네오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로 불린다. 네오가 초이에게 불법 소프트웨어를 건네자 그는 “할렐루야, 너는 내 구세주야. 나만의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예수가 죽은 뒤 3일 만에 부활했듯 요원 스미스의 총에 맞아 죽었던 네오가 트리니티의 키스를 받고 회생하는 곳은 변두리 어느 호텔의 303호실이다. 네오는 부활한 뒤 엄청난 힘을 소유하게 되는데, 예수의 부활한 육체가 일반적인 물리적 제약에 구속되지 않은 “특별한” 육체인 것(누가복음 24:31, 요한복음 20:19, 요한복음 20:26)과 마찬가지다. 죽음과 부활을 앞두고 세 명의 제자들 앞에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예수의 얼굴과 옷에는 눈부신 광채가 흘렀다. 스미스 요원을 제거한 뒤 네오의 몸에서도 광채가 난다. 예수가 “지상에서 임무를 마치고 승천했던 것”(누가복음 24:51, 사도행전 1:9)처럼 네오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로 날아오른다.

‘예언된 구세주’ 네오


»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
<매트릭스> 등장인물들의 이름 역시 기독교적 의미가 들어 있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서 육체를 입은 신의 아들인 예수는 아버지인 야훼와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에 의해 부활한다. 영화 속에서 네오와 가장 가까운 동료는 트리니티(Trinity)다. 트리니티는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또 네오는 트리니티의 믿음과 사랑에 의해 소생한다.

모피어스는 사도 요한을, 사이퍼는 예수를 배신했던 유다를 상징한다. 영화에서 시온은 최후의 인간의 도시이자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다. 구약성서에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시적이고도 종교성이 충만한 이름이다.

그러나 <매트릭스>에는 불교적 요소도 풍부하다.

우선 이 영화는 비기독교적인 발상으로 인간이 처한 곤경을 묘사한다. 고전적인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에서 비롯된 신으로부터의 소외다. 하지만 <매트릭스>에서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가 아니라 무지와 미망(迷妄)이다. 이는 불교적 시각이다.

<매트릭스>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로 ‘붓다의 환생에 대한 탐색’을 다룬다. 티베트 불교도들은 달라이 라마가 선임 달라이 라마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는다. 예언자인 오라클은 네오를 처음 만났을 때 얼굴과 몸을 검사한다. 아마도 네오가 ‘그’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표지를 찾는 행위로 보인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진정한 달라이 라마를 확인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절차를 거친다.

과다한 폭력은 기독교·불교와 어긋나

<매트릭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는 ‘공’(空)이다. ‘공’ 사상에 따르면 인간이 감각 기관을 통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은 실체가 없다. 이 주제는 오라클의 아파트 대기실에 있던 승복을 입은 어린 ‘후보’가 네오에게 던지는 선문답 같은 ‘숟가락은 없다’라는 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와 반대로 기독교에서는 일반적으로 현상적인 실재가 환상이라는 개념을 부인한다. 이것은 전능하고 진실한 신의 존재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는 전반적으로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이 들어 있다. 모피어스는 매트릭스 시스템을 ‘적’으로 규정한다. 그는 무지에 의해서든 선택에 의해서든 시스템의 일부분이 되는 사람들도 적에 포함시킨다. 이러한 이원론은 불교의 자비라는 최고의 미덕에 위배된다. 자비의 미덕은 모든 지각 능력이 있는 존재들에게 해당하고 우리가 친구든 적이든 모두 똑같이 차별 없이 대하도록 요구한다.

<매트릭스>의 구세주 개념은 비기독교적이다. 정통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예수는 폭력이나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희생적인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나타난 죄 없는 신인(神人)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네오는 그저 인간에 불과하다. 그는 결코 죄가 없지 않다.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 사용을 마다하지 않는다.

과다한 폭력 사용은 ‘아힘사’라는 불교의 가르침과도 어긋난다. 아힘사는 불살생(不殺生)·불상해(不傷害)를 의미한다. 요원에게 붙잡힌 모피어스를 구출하기 위해 네오와 트리니티는 정부 청사에서 경비원들을 무자비하게 죽인다. 이는 이 영화에서 가장 액션이 화려한 장면으로 관객을 자극하려는 상업적인 목적이 물씬 풍긴다. 불교에서는 지각하는 모든 존재들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존중받을 자격이 있고,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들은 붓다의 본성을 갖는다고 가르친다.


■ 마치질

네오는 부활했나 아니면 환생했나?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예언자 오라클의 아파트에서 7~8살쯤 돼 보이는 백인 어린아이를 만난다. 아이는 머리를 박박 깎고 가사를 걸치고 있는 동자승이다. 동자승은 생각의 힘만으로 숟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마음대로 한다. 아이는 네오에게 숟가락을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숟가락을 휘게 하려고 하진 마세요. 그건 불가능해요. 그 대신 진실만을 인식해요.”

네오가 묻는다. “무슨 진실?”

아이는 대답한다. “숟가락이 없다는 진실. 그러면 숟가락이 아닌 나 자신이 휘는 거죠.”

네오는 아이가 시키는 대로 한다. 그리고 실제로 숟가락이 휜다.

이는 중국 선불교 역사에서 유명한 육조대사(六祖大師) 혜능(慧能·638~713) 선사의 설화와 똑같다.

어느 날 바람에 깃발이 세게 펄럭이는 것을 보고 두 스님이 논쟁을 벌였다.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고 다른 스님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혜능은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움직이는 건 두 사람의 마음이다”라고 일갈했다.

깃발도 바람도 없다. 오직 마음뿐이다. 숟가락은 없다. 오직 마음뿐이다. 모든 건 마음에 달려 있다.

붓다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을 ‘사성제’(四聖諦)라고 부른다. 인간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분석과 해결 방법을 담은 진리다. 사정제는 고제(苦諦·dubkha)·집제(集諦·samudaya)·멸제(滅諦·nirodha)·도제(道諦·ma-rga) 4가지다.

고제는 ‘모든 것의 삶은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특히 생·노·병·사의 수레바퀴를 도는 인간의 삶은 행복은 짧고 항상 고통은 길다.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도 괴로움의 하나다.

집제는 괴로움을 발생시키는 원인을 말한다. 고통은 집착에서 발생한다. 인간은 각종 욕망에 얽매인다. 좋은 음식, 좋은 옷, 많은 돈부터 시작해 크게는 윤회의 틀까지 엄청나다. 집착은 세계를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 알기 때문에’ 발생한다. 현실에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진정한 본질이 아닌데도 마치 그것이 ‘세계의 진실’인 양 오해하는 데서 집착이 발생한다.

멸제는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괴로움에 좌우되지 않는 현실을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열반(니르바나)이다. 우리의 마음이 현실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어 있고 거기에서 고통이 발생하기 때문에 구원의 방법도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


» 네오가 숟가락이 없다고 생각하자 숟가락이 휜다.
넷째 진리는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말할 수 있다는 것으로 도제라 한다. 중생이 고통의 원인인 탐(貪)·진(瞋)·치(痴)를 없애고 해탈(解脫)해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실천수행해야 하는 8가지 방법을 말하는데 이를 팔정도(八正道)라고 한다.

팔정도는 ① 정견(正見): 올바로 보는 것. ② 정사(正思·正思惟): 올바로 생각하는 것. ③ 정어(正語): 올바로 말하는 것. ④ 정업(正業): 올바로 행동하는 것. ⑤ 정명(正命): 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 ⑥ 정근(正勤·正精進): 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⑦ 정념(正念): 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⑧ 정정(正定): 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다.

불교는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데 필수적인 정신 훈련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정신이 잘못 프로그램된 컴퓨터와도 같기 때문이다. 인과응보의 윤회로 연결된 수많은 생애들의 산물인 우리 자신의 ‘소프트웨어’는 실제 삶의 진정한 본성에 맞추어 다시 프로그램되어야 한다. 이런 새로운 프로그래밍이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의 목적이다. 네오의 훈련 과정은 자체가 명상의 테크노-사이버 버전이다. 불교의 수행법과 네오의 훈련과정은 그대로 닮았다.

무술 훈련을 끝낸 뒤 네오와 모피어스는 수십 층 고층 빌딩 위에 올라간다.

모피어스는 말한다.

“모든 걸 버려, 네오. 두려움, 의심, 불신까지…마음을 자유롭게 해 줘.”

그러고는 100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다른 고층 건물의 옥상으로 건너뛴다. 네오는 “와!” 하면서 놀란다.

네오는 말한다.

“알았어. 마음을 연다. 문제없어. 마음을 연다.”

그도 모피어스처럼 옆 건물을 향해 뛰어오른다. 그러나 곧 땅바닥에 떨어져 버린다.

왜 이렇게 됐을까? 네오는 매트릭스가 만들어낸 현실, 즉 고층 빌딩 옥상이 가상 세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떨어지면 죽는다”는 공포감에서 100%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높은 곳’, ‘무섭다’, ‘떨어지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구속되지 않은 마음, ‘고정되지’ 않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마음이 없는’ 상태, 즉 선불교에서 무심(無心)이라 지칭되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매트릭스>는 겉으로는 기독교적이지만, 내용은 불교적이다.


■ 담금질

영화 ‘매트릭스’와 종교 다원주의

<매트릭스>에는 기독교와 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담겨 있다. <매트릭스>는 이걸 단지 짜깁기했을 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종교적 다원주의를 제시한다. 종교적 다원주의도 그 폭이 다양하다. 미국 킹스대학의 그레고리 바샴은 종교 다원주의를 4가지로 나눈다.

먼저 극단적인 다원주의가 있다. 이 견해는 모든 종교적 믿음들은 똑같이 타당하고 참되다는 생각이다.

다음으로 근본적인 교리의 다원주의가 있다. 모든 주요한 종교적 믿음이 진리라기보다는 ‘본질적인 교리’가 진리라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 식육이나 연옥의 존재 여부를 둘러싸고 종교간 충돌이 있을지 몰라도 신의 존재, 종교적 경건함과 고결한 삶의 중요성, 인과응보가 실현되는 사후 세계의 존재 등에 관해서는 서로 교리가 같다는 관점이다.


»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조계사가 세운 성탄 축하 트리. 윤운식 기자
카페테리아 다원주의도 있다. 종교적인 진리는 다양한 종교들로부터 끌어온 여러 가지 믿음들을 혼합해 놓은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정신적인 것에 목말라하면서도 자신들을 훈육하는 종교는 거북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매력 있는 종교다.

마지막으로 초월적 다원주의는 꽤나 독특하다. 모든 주요한 종교들은 신(궁극적 진리·실체·실재)을 상정하지만 이를 인식하거나 개념화하는 구체적 방법은 각 종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종교들은 이것을 인격적인 존재(신, 알라, 시바, 비슈누)로 인식하고, 다른 종교들은 비인격적인 존재(브라만, 도(道), 공(空), 천(天))로 경험한다.

영화 <매트릭스>는 카페테리아 다원주의적 관점에 서 있는 듯하다.


■ 벼리기

아래 논제를 읽고 글을 쓴 뒤, <아하! 한겨레> 누리집(www.ahahan.co.kr)에 올려 주세요. 잘 쓴 글을 선택해 ‘통합논술 세미나’에 실어 줍니다.

1. 네오는 호텔 303호실에서 요원 스미스의 총에 죽는다. 트리니티는 네브카드네자르호에서 케이블에 꽂혀 있는 네오의 입에 키스하면서 “오라클은 내가 사랑에 빠진 남자가 그라고 했어. 그래서 너는 죽을 수 없어”라고 말한다. 트리니티의 키스를 받고 네오는 다시 살아난다. 관객들은 이 장면을 보고 보통 네오가 부활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있다.

‘풀무질’과 ‘마치질’의 글을 참고해, <매트릭스>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 네오는 부활했다고 봐야 하는지 환생했다고 봐야 하는지 분석하시오. (800자)

2. ‘담금질’에 나오는 종교 다원주의론 가운데 가장 올바른 태도는 어떤 것인지 자신의 생각을 써 보시오. (600자)

3.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그의 책 <정신적 기계들의 시대>에서 2099년에 다음과 같은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 인간의 사고는 컴퓨터 정신에 비해 그 어떤 우월성이 없다.

● 기계들은 인간과 똑같은 법적 지위를 갖는다.

● 인간과 기계는 육체적 영역에서나 정신적 영역에서나 함께 병합될 것이다.

● 인공지능 두뇌 이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을 인공 기능과 융합시킨다.

● 결과적으로 인간과 기계 사이에 명백한 구분점이 없다.

위와 같은 커즈와일의 생각에 대해 당신의 찬반 의견을 밝히시오. (12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