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상 50년] 책, 미래와의 대화 <17> 인간복제 시대에 인간으로 살아가기
생명윤리는 인권을 지키는 보루다
의학·유전공학 등 과학이 생명 존엄성을 훼손
인간복제 등 가치관의 혼동에 관대함 사라져
유상호기자 shy@hk.co.kr
우주를 플랑크 단위(양자역학의 기본 단위)로 해석해내는 21세기, 관습이나 종교의 권위에 기댄 반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 과학의 한 갈래가 관습적 사고와 충돌해 파열음을 내고 있다. 생명을 다루는 의학과 유전공학 등이 그것이다.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듯 보였던 신기술이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음을 목격하면서, 또 인간복제라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인식하면서, 과학에 관대하던 태도는 급격히 움츠러들었다. 특히 한국 사회는 황우석 사건을 거치며 그 충격을 심하게 겪었다.
생명윤리학(bioethics)이라는 신생 학문체계는 생명과학이라는 첨단 분야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 체계와 접하는 부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학과 윤리학이 만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통섭(consilience)적 특성을 지닌다.
이화여대 권복규(41)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현철(41)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생명윤리와 법>(이화여대출판부 발행ㆍ2005년 초판, 2009년 개정판)은 현대 생명윤리 담론의 개념과 범주,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한국의 법체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비교적 쉽게 설명한 개론서다.
학부생을 상대로 한 강의가 바탕이 됐지만 일반 교양서로 읽기에 무리가 없다. 두 저자를 만나 생명윤리 담론의 현 주소를 들었다.
- 생명윤리의 개념과 외연은.
"생명과학이 발달하면서 전에 없었던 윤리적 문제들이 생겨났다. 의료윤리는 고대부터 있어 왔지만, 배아줄기세포 연구 등 새로운 과제는 전통 의료윤리의 틀을 벗어난다. 동물 실험, DNA 수준의 인공적 분자 변형, 신경과학을 이용한 정신활동의 조작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윤리적 찬반 논쟁의 대상이 됐다. 생명윤리학은 이런 것을 다룬다. 기존의 윤리학이 신념이나 관점의 차원에서 옳고 그름을 가른다면, 생명윤리학은 공동체의 컨센서스를 추구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 과학적 사실, 예컨대 수정된 지 14일이 안 된 배아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과학의 판단은 명확한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사회적 합의에 의한 윤리'는 과학의 본질과 모순되는 것 같은데.
"현대 사회에서는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정신'(헤겔의 개념)이 불가능한데, 그것은 생명과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14일론'(척수가 되는 원시선이 생겨나는 수정 후 14일부터 배아를 독립된 생명체로 삼아야 한다는 이론)에 대해서도 과학계 내부에서 의견이 갈린다. 윤리학의 일종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생명윤리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응용의 문제다. 그래서 요즘은 E.L.S.I. 활동(Ethical Legal Social Influenceㆍ윤리, 법, 사회 영향 연구활동)이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를 따지면 생명과학 연구에 필요한 룰이 만들어질 수 없다. 논변의 대립 수준을 낮추면서 합의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는 것, 존 롤스가 얘기한 '오버래핑 컨센서스(overlapping consensus)'를 추구하는 것이 생명윤리학의 방법론이다."
- 생명윤리의 담론이 확대될수록 사회학이나 철학의 담론 구조, 또는 법률 체계와 중첩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 또는 조화시키는가.
"생명윤리학은 본래 사회학적 함축, 법제도의 요소가 포함된 융합학문이다. 그래서 다른 학문체계와의 충돌은 큰 문제가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생명윤리의 문제는 관(觀)의 문제가 아니라 컨센서스의 문제, 의사소통의 문제다. 현대 사회에서 가치관이 부딪치는 가장 첨예한 전선이 '생명'이다. 다른 가치는 양보하더라도 생명에 대한 가치관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 전선에서 대화의 공간을 확대해가는 것이 생명윤리학자들의 임무다.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기술과 가치체계에 충돌할 텐데, 생명윤리학의 의사소통 과정이 선행 모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 사회에서 생명윤리의 관념이 정착하는 데 걸림돌이 있다면.
"한 초등학교 특별수업에서 '생명윤리학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가 '과학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라는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황우석 박사 사건이 원인일 텐데, 당시 생명윤리학적 논의가 올바른 비판과 합리적 해결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안 돼' 하는 식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기술발전 대 생명윤리'의 대립구도로 몰고 간 언론의 책임도 있다. 지금은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가 '압축성장'하는 게 오히려 문제인데, 정부 주도의 제도 마련보다 생명을 다루는 과학자들의 의식 전환과 합의가 보다 중요하다."
- 생명윤리는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전문 윤리 측면이 강하다. 일반 대중에게 생명윤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생명윤리는 본질적으로 결국 인권의 문제다. 갈수록 유전자 검사가 간편해지는데, 5년 안에 친자 확인 정도는 집에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특정인이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 치매에 걸릴 가능성을 퍼센티지로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12년이면 이종이식용 복제돼지를 이용한 임상시험이 시작되는데, 이 환자는 평생 추적 관찰 대상이 될 것이다. 생명윤리학의 과제는 이런 기술적ㆍ사회적 변화에 대응해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 곧 인권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될 것이다."
생명윤리학의 쟁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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